와인의 탄생 시기가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상식이라면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근대 전의 중세 시기까지 사람들은 어떻게 와인을 마셨을까요?
유럽 각지의 포도원은 로마시대부터 조성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중세로 들어오면서 영주나 수도원에 귀속되었습니다.
각 포도원에서는 양조장을 건립해 와인 제조에 나섰지요.
포도원 운영에 천혜의 자연 조건과 기후를 갖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남부 유럽의 영주들은 자연스럽게 고품질의 와인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와인 제조에 썩 적합한 기후를 갖추지 못한 독일과 잉글랜드에는 자연스레 포도원이 없었으므로 영주들은 뒤늦게 앞다투어 포도원 육성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전술했듯이 독일과 잉글랜드의 기후가 남부 유럽에 비하여 포도재배에 여러모로 불리하므로 포도의 품종 개량과 토양 관리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지요.
또한 척박한 조건의 결과인 상대적으로 저열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다 보니 품종과 토양 외에도 양조기술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로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모름지기 인류 문명의 발단은 그 동기가 대부분 불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라고 할 수 있고 와인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죠.
독일은 맥주의 종주국이라 자처하지만 독일 와인 역시 분명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독일에도 와인이 발달된 것은 알프스 산맥의 남쪽이 포도재배의 북한계선이라는 통념을 깨고 라인 강 유역에 포도원을 일군 중세의 영주들 덕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정성 들여 가꾸는 것 외에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남의 것을 강제로 완력을 사용해 뺏는 일도 역사에선 심심치 않게 벌어졌고 와인이 나는 포도원도 이러한 사건을 피해갈 수 없었죠.
와인을 확보하는 다른 방법은 바로 와인을 소유한 장원을 무력으로 빼앗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영국 하면 비 내리는 날씨를 누구나 연상할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잉글랜드에서 좋은 와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극도로 어려웠죠. 이들은 항상 프랑스의 질 좋은 와인에 군침을 삼켰고 어떻게 하면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궁리했습니다.
중세엔 와인을 차지하려고 전쟁이 일어나고야 맙니다.
14세기 말에서 15세기 말까지 일어난 ‘100년 전쟁’은 영국인들이 질 좋은 보르도 와인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좋은 와인을 구하려는 유럽인들의 와인 사랑은 전쟁도 불사한 것입니다.
유럽의 중세는 봉건시대이기도 했지만 또한 가톨릭교의 시대이기도 했지요. 종교개혁 이전의 세상이었으니 말이죠.
이 때의 지배구조는 이중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국왕에 소속된 영주와 로마 교황청에 소속된 수도원이 그것입니다. 중세 시대 세계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상당 사건들이 이 두 지배계층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은 많이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수도원은 종교행사에 포도주를 사용하여(대표적으로 가톨릭 미사의 성찬례에 와인은 절대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수도원이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었죠.
이러한 이유로 와인뿐만 아니라 맥주나 증류주의 양조기술은 대부분 수도사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여기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와인 제조에 최적이라고 할 수 없는 독일에서는 이렇게 중세부터 시작된 수도사들과 양조자들의 노력이 근대 직전에 이르러 발상의 전환으로 독일만의 고급 와인 탄생이라는 결과를 맺게 됩니다.
바로 독일의 ‘아이스바인’인데요.
독일의 아이스바인(Eiswein)은 프리미엄 와인으로 널리 애호되고 있지요.
아이스바인은 영어로는 아이스 와인으로 쓸 수 있습니다.
왜 얼음이라는 단어가 앞에 더해지게 되었을까요?
18세기 라인 계곡의 포도원들은 전부 수도원에 속해 있었지요.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 당시 와인이 잘 양조되고 안 되고는 양조자들의 정성에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양조자들은 자신들의 정성에 와인의 질이 달렸으니 한시라도 허투루 양조할 수 없는 노릇이었죠.
포도는 수도원장의 허락 없이는 수확할 수 없었습니다.
때는 1775년.
실로스 요하네스부르크에 있는 한 수도원장은 사정상 장기간 타 지역에 머물렀는데, 돌아와 보니 포도송이는 농익어 쭈그러지고 눈에 덮여 있었습니다.
한숨이 나오는 작황 상태였습니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수도원장은 하는 수 없이 그 상태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포도를 수확해 술을 담갔습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 때 술독을 열었는데 거기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질 좋은 와인이 수도원장을 맞이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찌된 일이었을까요?
늦따기 와인이라고도 하는 독일의 프리미엄 와인 아이스바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양질의 와인을 만들려고 오랜 기간에 걸쳐 무던히도 애를 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국과는 상당히 다른 기후 조건이 문제였죠.
북독일 지역만 가더라도 한국이 푹푹 찌는 더위로 헐떡이는 6~8월 수온주가 25를 넘지 않는 날이 일상일 정도로(오히려 30도를 웃도는 더위는 며칠간만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후가 한랭하고 음습하여 포도의 질이나 작황이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특별한 포도 재배 기술과 수확 방법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연구가 헛되지 않았는지, 오늘날에는 라인가우(Rheingau) 지역과 모젤 자르 루버(Mosel-Sarr-Ruwer) 지역의 특수 와인이 그 이름을 떨치며 당당히 세계의 고급 와인 대열에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독일의 라인 계곡에 가면 겨울철인데도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도의 늦따기(Spatlese) 기법입니다.
이 기법은 우연히 발견된 후 최고급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고전적인 포도 수확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우연히 발견?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죠.
중세의 수도원은 와인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수도사들은 와인 제조 기술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습니다.
수도원장의 허락 없이는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던 시절. 이 말은 수도원이 부재 중이면 포도를 그냥 방치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죠.
이야기의 무대는 18세기 라인 계곡의 실로스 요하네스부르크의 포도원으로 다시 옮겨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 수도원장은 사실 업무차 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지방에서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다른 지방에 가 있는 사람과의 연락이 수월할 리가 없었죠.
수도원장이 자리를 비운 그 사이 그의 수도원에 속한 포도원의 포도가 익고야 말았는데, 수도원 사람들이 수확 허락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다고 합니다. 이윽고 겨울이 다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수도원장이 돌아와보니 포도는 너무 익어서 쭈글쭈글해지고 하얗게 곰팡이마저 피어 있었죠. 눈까지 덮여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도원장은 이렇게 변해버린 포도라도 수확하여 와인을 담도록 합니다.
수도원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그 상태로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최고의 와인이 그들을 맞이했고, 그 와인의 맛은 전에 없이 좋은 맛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그 비밀은 당도와 곰팡이였습니다.
보통의 포도는 풋포도에서 나는 시고 약간 떫은 맛이 포도가 익어 감에 따라서 사라집니다.
이 늦따기 포도로 제조한 와인은 당도가 더 높으면서도, 동시에 곰팡이로부터 유래한 향긋한 신맛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맛의 요소들이 아주 이성적으로 이루어진, 한마디로 지극히 이상적인 와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죠.
이후 다양한 상태의 포도를 이용한 와인 제조가 이루어졌고,
예전대로 잘 익은 포도 송이만을 골라 따서 만든 와인,
건포도 상태로 만든 와인,
그리고 아예 포도 송이가 얼어버린 다음에 수확하여 만든 와인까지 등징하게 됩니다.
위기는 기회다, 이런 말을 적용하기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기후의 핸디캡을 역이용하여 멋진 와인을 만들어 낸 라인 계곡의 장인들은 큰 갈채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보여집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농사일은 현대 산업 기술로 발달한 기계가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는 아직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고수하는 지역이 드물지 않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포도 한알 한알을 아직도 손으로 골라서 따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자신들이 내놓는 고품질의 와인에 대한 비결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겠죠.
물론 그 와인은 비싸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품질의 차별화가 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후에 양조학이 상당히 발달되어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연히 발견된 늦따기 기법이 두 가지 면에서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첫째는 포도 송이가 자연 상태에서 해동을 반복하면서 바람으로 인한 수분의 증발이 일어나 냉동건조 효과로 인해 당도가 높아집니다.
둘째는 포도맛을 미묘하게 변화시키고 발효에 참여하는 곰팡이 등의 미생물 집단이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이 미생물들은 결과적으로 와인에 섬세한 맛과 향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유럽의 대표적 와인 제조국가들에서 폭넓게 사용되며 각국의 언어로 이 기법을 일컫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즉 프랑스어로는 푸리튀르 노블레(Pourriture Noble), 독일어로는 에델포일레(Edelfaeule), 영어로는 노블 롯(Noble Rot)이라고 불립니다.
'세상 충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냑(Cognac) 지역의 유명 브랜디 일람 (0) | 2020.07.03 |
---|---|
전세계 각지의 토속주 그 다양한 세계 (0) | 2020.07.02 |
술잔, 그 깊고도 오묘한 세상 (0) | 2020.06.29 |
맥주 만드는 법 (0) | 2020.06.28 |
맥주의 기원, 탄생과 주요 구성 요소 (0) | 2020.06.27 |
댓글